행운의 전령(행운의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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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트의 마법

행운의 전령 2006. 5. 31. 17:14


양복 덕분에 결혼한 한 남자가 있다. 고등학교를 졸업하자마자 이 남자와 결혼에 골인한 내 친구는 지금 초등학교에 다니는 아들을 바라보며 이런 한탄을 종종 한다. ‘그놈의 양복만 아니었어도….’
한동네에 살았던 꼬질꼬질하고 자그마한 키에, 볼 것이라고는 명민해 보이는 눈밖에 없는 그 남자를 친구가 처음 만나게 된 곳은 집 근처의 자그마한 개척 교회였다. 친구는 고등학교를 졸업했으므로 당연히 청년부에 가입했다. 염불에는 관심 없고 잿밥에만 관심이 많던 청년부 사람들이 하나님을 빙자해 자신들의 친목도모에 여념이 없었을 것이라는 것은 안 봐도 비디오다. 친구는 그 남자의 시선에 들어, 그 후 보이지 않는 구애 작전에 시달려야 했다. 교회 청년부가 하는 일이니 무조건 피할 수도 없는 일이었다.
남자는 여자의 마음에 들기 위해 온갖 일을 서슴지 않고 벌였을 것이고, 여자는 한편으론 싫은 척, 또 한편으로는 뿌듯함을 느끼며 그 시선을 즐겼을 것이다. 하지만 남자는 늘 후줄근한 차림에 운동화만 신고 다니는, 신실한 기독교 신자였다. 한창 마음이 들뜬 스무 살 여자아이의 눈에는 그런 모습이 성에 찰 리 없다. 대학교에 다니는 또래의 친구들이 데리고 다니는 남자들을 볼 때마다 그런 생각은 더해졌다. 그러던 어느 날!

무슨 문제였는지, 법원에 가야 할 일이 생겼다. 친구로서는 여자 혼자 그곳을 간다는 것이 무섭기도 하고, 낯설기도 하여 문제의 그 남성에게 도움을 청했다. 그 남자, 그녀가 해달라는 거라면 불을 지고 섶에라도 뛰어들 정도로 지극정성이었으니 그녀에겐 호위병으로 거느리기에 아주 만만한 대상이었던 것이다. 그런데 평소에 돌쇠를 자처하던 이 남자가 약속장소에 떡하니 나타난 모습이 바로 그 문제의 양복이었다. 사단은 시작되었다.
첫째, 그녀는 그 남자가 양복 입은 모습을 단 한 번도 본 적이 없었다. 그건 마치 흙 속에 파묻혀 있던 진주를 찾아낸 것 같은 느낌으로 다가왔다.
둘째, 양복 입은 남자의 태도가 전례 없이 늠름해지고 씩씩해졌다. 게다가 그를 대하는 사람들의 태도가 남달랐다. 담당 공무원이 일어서서 악수를 권한다든지, 공손한 존대어를 쓴다든지 하는 것에서 ‘어딘지 함부로 해서는 안 되는 대상’으로 비쳐졌다. 남자는 심지어 무게 잡힌 말투에, 깍듯하지만 자신의 주장을 조목조목 펼치는 당당함도 보였다.
셋째, 알고 보니 꽤 그럴듯한 남자가 자신 앞에서는 한없이 작아지는 거다. 그녀를 위해서라면 무슨 짓이라고 할 태세다.
그녀는 미처 알아채지 못한 이 남자의 매력에 새삼 눈떴고, 결국 남자의 구애를 받아들였다. 지금은 종종 ‘양복’탓을 하긴 하지만 그럭저럭 알콩달콩 결혼생활을 해나가고 있다. 한 커플을 이어준 양복의 힘, 나는 그것을 ‘수트의 마법’이라고 부르고 싶다. 당신이 남자라면 본능적으로 ‘긴 생머리와 짧은 치마, 가지런히 모은 두 발’의 여성에게 호감을 느낄 것이다. 짧은 커트 머리에 군복 바지 차림의 여자에게서도 섹시함을 느끼는 남자가 없지는 않겠지만, 일반적으로 그렇다는 얘기다.

그럼 여자는 어떨까. 내가 만난 숱한 여성들은 ‘남자가 가장 매력적으로 보일 때는 셔츠 소매를 반쯤 걷어 올리고 열심히 일하고 있는 모습’ 이라고 입을 모은다. 이 말은 ‘비즈니스 수트를 입은 남자가 여자를 먹여 살리기 위해 열심히 일한다’는 의미로 해석 가능하다. 결국 수트 차림이야 말로 여자에게 매력적으로 어필할 수 있는 가장 효과적인 옷차림이라는 말이다. 그런데 하고 많은 옷 가운데 왜 하필 수트인가? 세련된 니트도 있고, 젊고 감각적으로 보이는 청바지나 스니커도 있는데.
첫째, 수트는 품위와 격식의 대명사다. 말하자면 사회적 함의가 이루어졌다는 뜻이다. 한 나라의 대통령이나 정치인, CEO들이 대중 앞에 모습을 드러낼 때를 떠올려보자. 대개는 잘 갖춰 입은 수트 차림이다. 엄청난 영향력을 행사하는 그들이 대중에게 비치는 자신의 모습을 위해 수트를 갖춰 입는 이유는 뭘까? 그건 수트를 입는 것이 남자가 기본적으로 갖춰야 할 ‘품위’라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수트는 현대 복식사에 있어 약 200년 동안 남성 세계를 지배해온 ‘격식’ 있는 옷차림의 대명사였다. 격식이란 상대와 원활한 의사 소통을 하기 위해 서로가 기본적으로 지켜야 할 예의가 관행화된 것이다. 거기엔 ‘내가 너를 함부로 대하지 않을 테니. 너도 나를 함부로 대하지 말라’는 뜻도 포함되어 있는 것이다.
둘째, 여자는 자신의 몸을 드러내면 드러낼수록 매력적인 반면, 남자는 감추면 감출수록 매력적이라고 한다. 수트는 남자의 몸을 가장 효과적이고 품위 있게 감추어준다. 수트가 만들어내는 각진 선을 떠올려보자. 군더더기 없이 쭉 뻗은 직선들이 남자의 몸을 감싸고 있다. 수트 어디에도 둥근 곡선을 찾기 힘들다. 게다가 셔츠와 타이, 재킷이 만들어내는 브이존의 긴장감은 더할 나위 없이 팽팽해 보인다. 이런 긴장감은 남자가 최적의 상태로 싸울 준비가 되어 있다는 의미를 드러낸다.

셋째, 여자는 수트 입은 남자의 모습에 판타지를 갖고 있다. 평소에는 별로 거들떠보지 않던 남자가 멋진 수트 차림으로 나타났을 때, ‘이런 멋진 남자와 멋진 연애를 하고 싶다’는 야릇한 감정에 빠지기도 한다. 남자도 매력적인 여성을 보면 누구나 ‘한번 쯤 소유해보고 싶다’는 상상을 하지 않나. 여자도 마찬가지다.
남자論에 가장 정통할 것 같은 여자는 <로마인 이야기>를 쓴 시오노 나나미다. 그녀가 쓴 <남자 이야기>는 읽고 있으면 여자인 내 입장에서도 ‘맞아, 바로 그렇지’라며 무릎을 치게 만드는 대목이 많다. 그녀는 남자가 멋있다는 것은 제대로 된 자신만의 스타일을 갖고 있을 때에야 비로소 해당된다고 누누이 말한다. 그러고는 아르마니 수트를 입고 페라가모 구두를 신는다고 아무나 멋있는 것은 아니니 자신만의 스타일을 가꾸라고 조언한다.
그런데 우리 모두 경험했다시피 ‘자신만의 스타일을 만드는 것’이 구체적으로 어떤 것인지 정확히 알기란 무척 어렵다. 스타일 있는 남자가 되는 데 어떤 법칙이 분명히 존재할 테지만---그리고 <에스콰이어>는 매번 그와 관련된 가이드라인을 제시하고 사례를 보여주지만 정작---멋스러운 사람이 되고픈 남자들의 입장에 서고 보면 ‘귀에 걸면 귀고리 코에 걸면 코걸이’인 말들처럼 보이지 않겠는가. 내가 화려한 여성 잡지들을 보며 고개를 끄덕이긴 하지만, 막상 실생활에는 별로 도움을 받지 못하는 것처럼 말이다.
하지만 아무리 어려운 일이라고는 해도, 스타일 있는 남자가 되기 위한 욕심을 저버릴 수는 없다. 사회적으로 성공하고 싶고, 맘에 드는 여자에게 어필도 하려면 실력도 실력이지만 옷차림도 무척 중요하다고 하지 않는가. 이 어려운 문제에 ‘수트’는 아주 중요한 키를 제공해준다. 당신이 언제 어떤 자리에 있건, 당신을 돋보이게 해주고 최소한의 스타일을 안전하게 보장하는 것, 그게 바로 수트다. 몸에 알맞게 피트된 수트를 입은 남자의 모습을 보는 일은 정말로 즐겁다. 평소 그다지 눈에 들어오지 않았던 남자, 어느 날 잘 다려진 셔츠에 실크 넥타이를 하고, 감색 수트를 입고 나타난다면 나는 그 사람을 분명 다시 볼 것이 틀림없다. 수트는 남자가 취할 수 있는 가장 완벽한, 그러면서도 안전한 남자만의 무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