덕양군(德陽君) 파
덕양군(德陽君) 이기(李岐.1542-1581)는 조선 11대 임금인 중종과
어머니 숙의 경주이씨 사이에서 태어났으며, 부인은 영가군부인 권씨다.
시호는 정희(靖僖)다. 중종 19년에 태어난 덕양군은 선조 14년 58세로 사망했다.
9세 때에 덕양군으로 책봉되었던 그는 어머니 숙원 이씨가 출산 후 닷새 만에 세상을 떠나,
숙의 김씨 손에서 자랐다. 음률에 해박하고, 이복 형제인 인종과 명종과도 우애가 돈독했다.
종친부의 종부시, 사옹전, 문소전, 연은전에서 관직을 역임했으며,
선조 대에 이르러서도 종실로서의 예우가 컸다.
묘소는 경기도 성남시 궁내동 청계산(淸溪山)
와동(瓦洞)에 부인인 영가군부인(永嘉郡夫人) 안동권씨와 합장되어 있다.
묘소 아래에는 덕양군의 사당 정희사(靖僖祠)가 있다.
덕양군파의 종산(宗山)인 이곳은 명당으로 유명하다.
덕양군 장례 당시 지관은 이곳을 대명지라 하여 묘 자리로 정했다고 한다.
묘역 넓이도 42만여 평에 이른다. 가까이 서울 분당 신도시가 인접해 있고
고속도로가 그 앞을 지나가고 있다.
영가군부인 권씨와의 슬하에 4남을 두었다.
장남 종린(宗麟)은 풍산군(豊山君) 현록대부로, 차남 희린(希麟)은 풍성군(豊城君)
정의대부로, 3남 명린(命麟)은 풍천도정(豊川都正) 명선대부로 대를 이었다.
세 아들의 손이 번창하여 오늘날 3천 세대 1만5천여명의 후손들이 있다.
4남 계린(季麟) 풍해수(豊海守)는 후사가 없다. 후손 중에 입신한 자가 많아
공의 시호를 받은 이가 6명, 문과급제 18명, 무과급제 22명이며
통정대부(정3품 당상관) 이상이 165명이나 되는 명문을 이룩했다.
시호를 받은 사람은 덕양군 정희공을 비롯 충숙공(忠肅公)·
장정공(莊靖公)· 양정공(良靖公)· 정의공(靖毅公)· 문경공(文敬公) 등 여섯 명이다.
* 덕양군(德陽君) 파의 항렬자 일람표입니다
시 조 世 |
선계 | 시조:世 | 36 | 37 | 38 | 39 | 40 | 41 | 42 | 43 | 44 | 45 | 46 | 47 | 48 | 49 | 50 |
제왕 | 파조:代 | 7 | 8 | 9 | 10 | 11 | 12 | 13 | 14 | 15 | 16 | 17 | 18 | 19 | 20 | 21 | |
28 세 | 중종 中宗 |
덕양군 (德陽君) |
관제 | 동필 | 경희 | 주 | 현 | 승 | 림 | 섭 | 규 | 종 | 해 | 근 | 용 | 수 | 진 |
觀濟 | 東馝 | 敬熙 | 周○ | ○鉉 | 承○ | ○林 | ○燮 | ○圭 | 鍾○ | 海○ | ○根 | 容○ | ○壽 | 鎭○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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