행운의 전령(행운의학)

무지개다리 올라가는 그날까지 행복의 문을 활짝 열어 꿈을 이루세요.

행운의 전령 자세히보기

(* ̄ . ̄)a생활정보/생활의지혜.정보.상식

김삿갓은 왜 세상을 떠돌았나

행운의 전령 2006. 5. 13. 23:29
김삿갓은 왜 세상을 떠돌았나

조선역사에는 소위 기인(奇人)으로 평가받는 인물들이 많다. 세조의 찬탈에 세상을 등지고 살았던 김시습, 선조때 예조정랑까지 지냈다가 당파싸움을 개탄하고 명산을 찾아다니며 여생을 보낸 임제, 순조때 풍자와 해학으로 위선된 세상을 시로 표현한 김삿갓 등이 그들이다.

특히 조선의 기인들 중에서도 김삿갓은 서민적인 이미지와 쉽게 접할 수 있는 시로 가장 대중성을 확보하고 있다고 할 수 있다. 그러나 김삿갓의 실체에 대해서는 아직 제대로 알려져 있지 않다. 더욱이 그의 트레이드마크처럼 된 ‘방랑 시인’의 배경은 수수께끼에 싸여있다고 할 수 있다. 기인 김삿갓에 대해 알아봤다.

김삿갓의 출생배경

김삿갓(1807∼1863)의 본명은 병연(炳淵)이고, 삿갓을 쓰고 다녔다고 해서 김삿갓 또는 김립(金笠)이라고 흔히 부른다. 본관은 안동(安東)이고, 경기도 양주에서 출생하였다. 그의 할아버지는 익순(益淳)이고, 아버지는 안근(安根)으로 그는 안근의 세 아들 중 둘째로 태어났다.

그의 조상은 19세기에 조정 권력을 좌지우지하던 안동 김씨로 그가 태어날 적에 그의 집안은 부러울 것이 없었다. 할아버지 익순은 높은 벼슬을 하다가 그가 다섯 살 적에 평안도의 선천(宣川) 부사로 나가 있었다. 그런데 1811년 평안도 일대에서 ‘홍경래의 난’이 일어나면서 그의 집안은 풍지박산이 나고 말았다.

조선의 19세기초는 안동김씨의 세도정치가 극에 달한 시기로 국가경제가 무너지면서 농토에서 유리된 농민들은 유민이 되거나 임금 노동자로 전락하였다. 이때 양반출신인 홍경래는 서북인들에 대한 차별과 김씨 세도정권 타도의 기치를 내걸고 봉기를 일으켰다.

홍경래의 농민군은 거병한지 10일만에 가산, 곽산, 정주, 선천 등 이북의 10여개 지역을 점령하였다. 가산 군수 정시(鄭蓍)는 항복을 않고 저항하다가 칼을 맞아 죽었는데 김삿갓의 할아버지 김익순은 몸을 재빨리 피했다.

그후 김익순은 농민군에게 잡혀 직함을 받기도 하고 또 농민군의 참모 김창시가 잡혔을 적에 그 목을 천냥에 사서 조정에 바쳐 공을 위장하려 하기도 하였다. 이런 이유로 김익순은 모반대역죄로 참형을 당했다. 그 뒤 정시는 만고의 충신이 된 반면 김익순은 비열한 인물로 회자되었다.

김삿갓의 집안은 폐가가 될 수밖에 없었고 역적의 자손이어서 익순의 자식, 손자들이 법에 따라 죽임을 당하거나 종이 될 운명에 처했다. 그러나 안동 김씨들의 비호로 죄는 김익순에게만 묻고 손자들은 종이 되는 신세를 면하게 되었다.

김삿갓의 어머니는 아들들을 보호하기 위해 큰아들 병하와 작은 아들 병연은 종을 딸려 황해도 곡산으로 가서 숨어살게 하고, 자신은 막내아들을 데리고 경기도 광주의 촌구석에서 살았다.

과거시험과 방랑 결행

세상이 잠잠해진 뒤 김삿갓의 어머니는 자식들을 불러모으고 집안 내력을 숨긴 채 살았다. 남달리 영민한 둘째 아들 병연은 서당에 다니게 했다. 어린 병연은 열심히 공부를 했고, 스무살이 되자 출세를 위해 지방 향시(鄕試)에 나갔다.

시제(詩題)는 “가산군수 정시의 충절을 논하고 선천부사 김익순의 죄가 하늘에 닿는 것을 탄식한다”였다. 병연은 자신있게 시를 써내려 갔다. 시의 끝구절은 다음과 같이 매듭지었다.
“임금을 잃은 이날 또 어버이를 잃었으니
한 번만의 죽음은 가볍고 만 번 죽어 마땅하리
춘추필법을 네 아느냐 모르느냐
이 일을 우리 역사에 길이 전하리”

그는 장원급제를 했고 어머니에게 자랑을 하였다. 그러자 어머니는 할아버지의 옛일을 더 이상 감출 수 없었다. 충격을 받은 병연은 방황했다. 어머니는 아들의 마음을 가라앉히기 위해 스물두살적에 장가를 들게했다. 그러나 병연은 아들을 본 뒤에도 마음을 잡지 못하고 가족과 이별을 하였다.

삿갓쓰고 세상 풍자

병연은 집을 나온 뒤 삿갓을 쓰고 전국을 떠돌아다녔다. 삿갓을 쓰고 시로 세상을 풍자하면서도 신분을 밝히지 않아 김삿갓으로 통했다. 그는 형 병하가 세상을 떠나자 2년만에 집에 들렀다. 잠시 집에 머무르는 동안 둘째아들을 보았다. 그러나 그는 다시 집을 떠났다. 어머니와 아내와의 마지막 이별이었다.

그후 그는 발걸음이 안닿는 곳이 없을 정도로 전국을 떠돌았다. 북으로는 강계, 평양, 금강산 아래로는 여산, 지리산 자락까지 방랑을 계속했다. 그의 발길이 닿는 곳마다 거침없이 시가 쏟아져 나왔다.
그는 양반의 허세와 벼슬아치들의 탐학, 굶주림에 허덕이는 농민, 정이 그리운 기생 등을 대하며 위선에 찬 현실과 고단한 인생들을 목격했다. 그는 그러한 현실을 풍자와 해학으로 일삼았다.

그는 술만 보면 통음을 했다. 실컷 마시고는 시가 생각나면 생각나는 대로 형식을 깨고 거침없이 시를 지었다. 또 늘 겹옷을 입고 살았는데 누가 따뜻이 재워주고 먹여주고 솜옷을 지어주면 마다않고 입었다가 헐벗은 사람을 만나면 솜옷을 벗어주고 다시 남루한 겹옷을 걸쳤다고 한다.
그는 57세때 전라도 땅 이름없는 곳에서 숨졌다. 그의 둘째 아들이 시신을 거두어 영월땅 태백산 기슭에 묻어주었다.

김삿갓의 참모습

김삿갓의 삶은 그 자체가 시였다. 그는 위선에 찬 양반세계를 해학으로 풍자하며 양반의 형식적이고 음풍농월식의 시를 거부했다. 그의 시에는 더럽고, 뒤틀리고, 아니꼬운 서민들의 속내들이 편편이 배어 있다.
김삿갓과 관련한 일화중에 다음과 같은 것이 전한다.
김삿갓이 개성에 갔을 적에 어느 집 문앞에서 하룻밤 재워주기를 청하자, 그 집주인은 문을 닫아걸고 나무가 없어 못재워 준다고 했다. 이때 그가 지은 시는 이러했다.

“고을이름은 개성인데 어찌 문을 닫아걸며,(邑名開城何閉門)
산이름은 송악인데 어찌 나무가 없다 하느냐.(山名松岳豈無薪)”

거들먹거리는 양반을 풍자적으로 희롱하는 문재(文才)가 번득이는 장면이다.
역사학자 이이화씨는 김삿갓에 대해 “서민의 애환을 노래하고 민중과 벗하며, 한문을 한국화하고 한시의 정형을 깨부순 시인”이라고 평했다.

삐뚤어진 세상을 농락하고 기성 권위에 도전하고 민중과 함께 숨쉬며 탈속한 ‘참여시인’이었고, ‘민중시인’이었다는 것이다.



돈이란(김삿갓)

- 周 遊 天 下 皆 還 迎 (주유천하개환영) ~
천하를 돌아다니면 모두 너를 환영하고

- 興 國 興 家 勢 不 輕 ( 흥국흥가세불경) ~나라도 흥하게
하고 집안도 흥하게하니 너의 세력이 가볍지 않구나

- 去 復 還 來 來 復 去 (거복환래래복거) ~
갔다가는 다시오고 왔다가는 또 가며

- 生 能 捨 死 死 能 生 (생능사사사능생) ~
살자리에 죽이기도 하고 죽을자리에 살게도 하는구나

- 千 里 行 裝 付 一 柯 (천리행장부일가) ~
천리길 행장을 한 단장에 의지하고

- 餘 錢 七 葉 尙 云 多 (여전칠엽상운다) ~
남은돈 일곱푼도 아직 많으리라 생각하고 흐뭇해 하여

- 裏 中 戒 爾 深 深 在 (리중계이심심재) ~
제발 이제 너만은 주머니속에 깊이 있거라 타일럿건만

- 野 店 斜 陽 見 酒 何 (야점사양견주하) ~
해지는 들길에서 또 주막을 보았으니 어찌 그냥갈겄인가

- 斜 陽 叩 立 兩 柴 扉 (사양고립양시비) ~
해질 무렵에 두서너집 문을 두드렸으나

- 三 被 主 人 手 却 揮 (삼피주인수각휘) ~
주인들은 모두 손을 흔들어 나를 쫓는구나

- 杜 宇 赤 知 風 俗 薄 (두우적지풍속박) ~
두견새 조차 이 박정한 인심을 알아 보는지

- 隔 林 啼 送 不 如 歸 (격림제송부여귀) ~
나를 위로하며 집으로 돌아가라고 슬피 울어 주도다

-地 上 有 仙 仙 兒 富 (지상유선 선아부) ~
땅위에 신선이 있으되 그 신선은 부자만 알고

- 人 間 無 罪 罪 有 貧 (인간무죄 죄유빈) ~
인간에는 죄가 없으되 그의죄는 가난한 탓이라

- 莫 道 貧 富 別 有 種 (막도빈부 별유종) ~
부자나 빈자나 별다른 종자로 생각지들 마라

- 貧 者 還 富 富 還 貧 (빈자환부 부환빈) ~
빈자도 부자가 되고 부자도 빈자될 날 있으리라

-掘去掘去彼隻之恒言 이오(굴거굴거피척지항언) 이오 ~
파간다 파간다 함은 저쪽의 늘 하는 말이오

- 捉來捉來本守之例題 인데 (착래착래본수지례제) 인데 ~
잡아오라 잡아오라 함은 본군 군수의 으레하는 얘기인데

- 今日明日 하니 乾坤不老月長在 하고 (금일명일) 하니
(건곤불로월장재) 하고 ~ 이렇게 오늘 내일 하고
미루기만 하니 천지는 늙지않고

- 此頃彼頃 하니 寂莫江山今白年 이라 (차경피경) 하니
(적막강산금백년) 이라 ~
세월은 가기만 하니 이달 저달 하는 사이에 쓸쓸한
강산은 어느덧 백년이 될 것이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