행운의 전령(행운의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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Οо³°`제왕별 파시조/성종대왕

성종대왕-영산군(寧山君) 파

행운의 전령 2010. 8. 15. 17:27

영산군(寧山君) 파

영산군(寧山君) (1490∼1538)

본명은 이전. 성종과 숙용 심씨의 소생이다.

숙용 심씨는 청송심씨로 이성군, 영산군 등 아들 2명과 경순옹주, 숙혜옹주 등 딸 2명이 있다.

영산군의 자는 공근(公謹)이다. 그는 명민하고 학식이 깊어 왕자시절부터 중종에게 총애를 받았다. 중종이 잠저에 있을 때 연산군이 사냥을 핑계 삼아 가해하려고 할 때

그는 기지와 용기로써 화를 면했다.

영산군은 중종반정에 앞장섰다. 1506년(중종 1) 형인 회산군과 종사의 위급함을 걱정하고

몇몇 중신들과 종사 회복을 위한 은밀한 계획을 세웠다.

그 뒤 연산군이 성 밖으로 사냥 갔다 환궁할 때, 영산군은 백관을 거느리고

정현왕후(성종의 비)의 명이라며 성문을 가로막고 연산군을 들이지 않았다.

결국 연산군은 교동으로 물러나게 되었고 이어 중종이 보위에 올랐다.

영산군은 1523년(중종 18) 의정부의 관노인 정막개가“박영문 등이

영산군을 추대하여 반란을 꾀한다.”는 밀고에 연루되어 황해도 배천으로 귀양을 갔다.

그러나 평소 그를 신뢰하던 중종은“영산군의 충성은 내가 익히 아는 바이니라.”하며

1527년 방면시켰다.

 

영산군(寧山君) 파항렬자 일람표입니다



선계 시조:世 36 37 38 39 40 41 42 43 44 45 46 47 48 49 50
제왕 파조:代 8 9 10 11 12 13 14 15 16 17 18 19 20 21 22
27 세 성종
成宗
영산군
(寧山君)
병검 기병 현준
秉儉 基炳 鉉駿 鍾○ ○承 采○ ○薰 ○九 ○雨 ○珩 ○成 起○ 庸○ 宰○ 廷○