행운의 전령(행운의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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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性)해학의 극치 변강쇠 옹녀 묘를 찾아서 오도재(悟道峙)를 넘다

행운의 전령 2006. 5. 19. 21:21

아래에 성(性)해학의 극치 변강쇠전의 배경 무대 함양 마천 벽송사 서암 사진 21장 있습니다.

벽송사와 서암을 답사를 하고 범파 회장님하고 나는 오도재가 15년 공사 끝에

2003년 11월 30일 새롭게 개통된 함양에서 오도재 넘어 마천까지 12km도로 확장포장 공사를

1988년부터 시작해 이번에 개통했다. 함양에서 가장 빠른 지리산 가는 길이다.

아직 재의 고개에는 포장이 되어있지 아니했다.

이 재에서 지리산 천왕봉을 가장 가까이서 볼 수 있는 최고의 전망대이기도 하다.

앞으로 가장 뜨는 ‘재’가 될 것으로 본다 여기에 오도산 신령 비석이 오랜 세월을 읽을 수 있고 새로운 큰 빗돌은 우리를 반기고 서있다.

 

성(性)해학의 극치 변강쇠 옹녀 묘

 

옛적 내륙지방 사람들이 남쪽 해안 지방 사람들과 물물 교환을 위해

지리산 장터목으로 가기 위해서 반드시 넘어야 했던 고개가 오도재였다.

사람 왕래가 많다보니 이야기도 많다. 변강쇠 묘와 옹녀샘에 얽힌 구전이 대표적이다.

강쇠와 옹녀가 살만한 곳을 찾아 정착하면서 온갖 짓을 다했던 곳이 오도재 부근과

바로 등구 마천. 좀더 자세히 말하면 함양군 마천면 등구 마을 일대가

변강쇠가의 배경 무대인 셈이다.

 

우리나라 성(性)해학의 극치라고 일컬어지는 변강쇠전

계집을 좋아하는 인간을 해학적으로 표현한 ‘변강쇠전’은 작가와 창작연대는 알 수 없고

신 재효가 개작한 판소리 12마당에 속하여 전할 뿐이며, 일명 ‘가루지기전’이라고도 한다.

요즘 사람들이 한잔 걸죽하게 마시면 우스갯소리로 더러 입에 올리는

변강쇠 이야기는 지리산 골짜기가 배경 무대이다.

‘변강쇠전’은 판소리로 공연이 되었던 작품이다.

신 재효가 정착시킨 판소리 사설 중에 이 작품이 들어 있으니,

고종 때까지 변강쇠전은 판소리로 불려졌다고 볼 수 있다.

실제로 송 흥록과 장 자백이 ‘변강쇠가’를 잘 불렀다고 하는 기록도 있다.

근래에 들어와서 판소리 기능 보유자인 박 동진옹이 신 재효의 사설에 곡을 붙여

그 맥을 이어오고 있다. 박 동진옹의 구수한 목소리로 변강쇠가는 이렇게 시작된다.

중년에 맹랑한 일이 있던 것이었다.

평안도 월경촌에 한 여인이 살고 있으니,

얼굴은 춘 이월에 반개 도화가 옥반에 어리었고 초승에 지는 달빛이 아미간에 비치었다.

세류같이 가는 허리는 봄바람에 하늘하늘, 찡그리며 웃는 것과 말하며

걷는 태도는 서시와 양귀비라도 따라갈 재간이 없었던 것이었다.

그런디 사주 팔가가 어떻게 더럽게 타고났던지 서방을 잡아먹는듸

지긋지긋하고 징글징글하게 잡아 먹는듸 꼭 이렇게 잡아먹딘 것이었다.

 

사진 벽송사 목장승 민속자료 제2호

금호장군과 호법 대신

 

남편을 잡아먹는 팔자를 타고난 옹녀로 인해,

그가 사는 삼십리 안팎에는 상투 올린 사내는 한 사람도 볼 수 없고

열 댓살 먹은 총각 도 볼 수가 없으니

여자들이 밭을 갈고 처녀가 짐을 지게 되는 형편이었다.

평안도 함경도 사람들이 합세하여 쫓아내니, 남쪽 지방으로 발길을 돌렸다.

이때 삼남에서 빌어먹다가 양서지방으로 올라가는 천하 잡놈 변강쇠라는 사람과

개성 부근 청석골 좁은 골짜기에서 마주쳤다.

두 남녀는 서로 눈이 맞아 부부의 인연을 맺고 각처를 떠돌며

옹녀는 먹고살기 위해 들병장수 막장사를 할때, 변강쇠는 주색잡기로 세월을 보냈다.

하루는 옹녀가 변강쇠를 보고 말하기를 『당신 성질 가지고 도망 살이 하다가는

맞아 죽기 알맞겠으니 깊은 산중으로 들어가서 팥밭이나 파서 먹고

땔나무나 베어 때면 노름도 못할 것이요,

강짜도 못할 테니 산중으로 들어갑시다』 라고 하였다.

이리하여 변강쇠와 옹녀는 지리산을 찾아 남쪽으로 내려왔으며.

이들의 정착지가 바로 등구 마천이다.

마천은 지리산 북쪽 관문을 통틀어 부르는 지명으로 행정구역상 함양군 마천면이다.

등구는 마천면에 속해 있는 마을 이름이다.

변강쇠와 옹녀는 각처를 떠돌다가 남으로 내려와 함양 땅에 도착해

오도재를 넘어 마천 땅으로 들어갔을 것이다.

함양읍 구룡리 조동 마을에서 지안재와 오도재를 넘으면 마천 등구 마을로 이어진다.

마천장이 없었던 일제 때는 마천 사람들은 오도재와 지안재를 넘어

30여 리 떨어진 함양장까지 나가 가축과 소금 등을 사왔으며

집에서 기르던 돼지 새끼를 지게에 짊어지고 함양장에 내다 팔았다고 한다.

변강쇠 판소리에 『약간 남은 살림살이를 짊어지고서 지리산 중을 찾아가니,

첩첩한 골짜기에 기와집 한 채가 덜름 서있구나.

이 집은 어떤 부자가 임진왜란 때에 난리를 피해서 산중으로 들어왔다가,

이 집을 짓고 살다가 난리가 평정되어 뜯어갈 수 없어 그저 두고 갔는지라.

호랑이 여호 맷도야지 다람쥐가 집을 짓고 살고 있는지라』라는 대목이 있다.

변강쇠가 지리산으로 내려와 자리를 잡았다고 하는 산속의 폐 기와집은

이곳 사람들이 빈대궐 터라고 부르는 구양리 마을 뒷산일지도 모른다.

빈대궐 터는 가야의 마지막 왕 양왕의 대궐 터라는 이야기가 전해온다

. 또, 한편으로 빈대궐터에 등구사가 있었다고 한다.

등구사의 창건 년대나 폐찰 년대는 알 수 없으나 500여 년 전 탁영 김 일손은

그의 지리산 산행기인 속두류록에서 산의 모습이 거북과 같다고 하여

절 이름을 그렇게 지었다고 하는 기록이 있다.

아무튼, 변강쇠전에 나오는 폐기와집은 빈대궐터에 있었던

폐사된 등구사를 두고 말하는 것이 아닌가 싶다.

지리산 중 기와집에 정착한 변강쇠는 낮이면 낮잠 자고 밤이면 배만 타니

옹녀가 견디기가 못해 “건장한 저 신세에 밤낮으로 하는 일이

낮이면 낮잠만 자고 밤에는 나를 조르니 굶어 죽기는 고사하고 우선 얼어서 죽겠소.

오늘부터는 지게를 짊어지고 나무나 좀 해다 주시오”하고 변강쇠를 밖으로 내몰았다.

게으른 변강쇠. 나무는 하지 않고 점심 단단히 먹은 후에 솔 그늘 잔디밭에

돌 베개를 높이 배고 한숨 자고 일어나 눈을 뜨고 바라보니

하늘에는 별이 총총 났는지라. 마음이 급했다.

이때 “사방을 둘러보니 등구 마천 가는 길에 장승 하나 서있구나”라고 하면서

서슴없이 장승을 쑥 빼어 지게에 지고 집으로 의기양양 돌아와 군불을 지폈다.

한편, 원통한 함양 장승 목신은 서울 노량진 나루터의 장승 대방을 찾아 나섰다.

성이 난 장승 대방은 팔도에 통문을 돌려 수만 장승을 새남터에 모이게 하고

변강쇠 응징방법을 강구해 결국 8백여 가지 병으로 변강쇠를 죽게 만든다.

옹녀는 남편의 초상을 치르기 싫어 그것을 맡아 해주는 사람과 살겠다고 소문을 낸다.

이 소문을 들은 호색한들인 파계승 초란이며 각종 풍각쟁이들이 덤벼들었다가

변강쇠의 송장에 붙어 횡사하고 만다.

여기에 각서리패 마중들도 끼어 들어 죽을 고생을 다 한다.

그 중에는 덥득이라는 자가 있었는데 그는 등에 붙은 송장을 때려고

소나무며 절벽사이를 요리조리 빠진다.

그러다가 겨우 송장들을 떼어버리고 혼이 나서 부리나케 고향으로 떠나고 만다.

서울 관객 20만을 돌파한 김 성녀의 마당놀이 변강쇠전이 공연되었다.

얼굴 자체를 보기만 해도 웃음이 터져 나오는 윤 문식과 김 성녀, 김 종엽외

극단 미추 단원 30여명이 출연하는 이번 무대는 우리에게 너무 잘 알려진

옹녀와 강쇠의 한판 승부로 변강쇠를 사회모순에 고민하는 인물로

새롭게 해석한 게 하나의 특징이다.

 

김 성녀의 마당놀이 변강쇠전은 나무하러 가던 강쇠가 마을의 수호신인 장승을

땔감으로 패오자 전국의 장승들이 몰려들면서 강쇠는 장승 동티로 죽고….

옹녀는 다시 과부가 된다.

사건은 옹녀가 강쇠의 장례 치를 돈이 없어 강쇠를 치워주면

같이 살겠다고 하면서 부터 승려, 초랑이, 가객, 사물패등이 몰려든다.

이들은 모두 변강쇠 영혼의 주문에 따라 죽고,

송장을 치우려던 사람들도 모두 송장에 붙어

떨어지지 않으면서 극의 재미를 더해주게 된다.

출연 배우인 윤 문식과 김 성녀의 걸쭉하면서도 구수한 입담들이 재미있는 마당놀이다..

함양 등구 마천을 배경으로 한 변강쇠전은 열녀는 두 지아비를 섬기지 않는다라는

봉건적 윤리 법도를 헌신짝처럼 내던지고 음탕한 짓을 다하는 옹녀라는 음녀와

어지럽기 그지없는 생활을 하는 변강쇠라는 인물을 통해

봉건 사회말기의 부패한 사회상을 풍자한 작품이라고 할 수 있다.

특히, 함양 벽송사 목장승은 등구 마천의 대표적 장승으로서

민속자료 제2호로 지정되어 있는데,

벽송사 건립년대인 1520년경에 세워진 것으로 추정되며 재료는 밤나무이다.

왼쪽의 장승은 머리부분이 불에 타 없어졌고,

입은 홀쭉하게 꼭 다물어 뺨이 움푹 패였으며,

그 아래 짧은 수염이 나 있다. 얼굴의 표정은 과장과 질박함을 동시에 표현하고 있어

장승의 신앙성격 잘 나타내고 있기도 하다.

마천 벽송사 서암을 답사를 하고 오도재를 넘어 함양으로 내려오던 중

변강쇠 옹녀 묘가 있는 큰 석등을 보고 묘를 찾아 등산을 힘들게 올라가서 찾았다.

변강쇠 옹녀 2기의 묘 앞에 작은 나무 장승으로 비를 세우고

묘 뒤에 큰 목장승이 서있는데 오래되어 오른쪽 장승은 코가 썩어 떨어져 있고

만져보니 썩은 장승이었다. 뒤에는 제 3회 변강쇠 옹녀 축제 현수막이 걸려 있었다.

국사편찬위원회사료조사위원 송석 하영수

 

성(性)해학의 극치 변강쇠 옹녀 묘를 찾아서 오도재(悟道峙)를 넘다.

 

지리산제일문의 모습

 

 

 

청해 인오조사님의 오도송비

 

일두 정 여창의 시비

함양이 나은 일두 정 여창은 우리나라의 해동 18현중에서도 5현에 드시는 분으로

바로 남계서원에 배향되고 있으신 분으로 이 곳에 시한 수를 남기셨다.

 

탁영 김일손의 시비

이분도 함양에서는 빠지면 안될 학자분으로 청계서원에 배향하고 계시는 분이다.

그러니 이 곳을 지나칠리 만무하니 시한수가 없겠는가?

 

뇌계 유호인의 시비

이분도 문장가이며 김종직의 제자로 거창현감을 지냈으니

이곳에 들렸을 것이니 시문 한수가 없을 손가?

함양 남계서원에 제향하고 있다.

 

금재 강한의 시비

나이 16~17세에 필력이 좋아 성종이 그 필치를 보고 기특하여

종이와 붓을 하사 글씨를 다시 쓰게 하였는데 그의 필법을 보고 칭찬이 대단 하였다고한다.

그러니 이 곳을 그냔 지나쳤겠는가? 함양의 구천서원에 배향하고 있다고 한다.

 

오도령 수호신 위비

이곳을 오가는 손들의 안녕을 비는 성황당이 있었던 곳에 이 비를 세워

그 역활을 하게 한 것인가 보다.

 







 

 

지리산 벽송사 서암 내부

화엄경의 세계를 동굴 안에 조각으로 표현해 놓았습니다.

굴 안이 온통 조각으로 가득차 있는 화장 장엄의 세계입니다.

 

 

굴 법당도 문이 2개가 있군요. 그 중 하나인 극락전 현판을 달고있는 문.

 


우리가 보통 이용하는 문은 바로 앞에 관세음 보살님께서

정병에서 감로수를 내려 주시는군요.


문의 위쪽에는 작은 석가산이 모셔져 있어요.


석굴에 들어서면 스님께서 합장으로 맞아주신다.


수인을 보니 아미타부처님을 중심한 미타삼존이군요.


좌협시 관세음보살님


우협시 대세지보살님


아미타불


전생인 법장비구의 48원


나무 아래서 열심히 수행을 하고 계시네요.


재가불자도 열심히 수행하시는군요.

 


이렇게 열심히 착하게 살아온 중생들은 불국정토에 연화 화생합니다.

극락정토에 왕생하면 부처님들이 이렇게 모시러 마중 나와요.

 


극락 세계는 하늘나라 천인들이 이렇게 맛있는 것도 주시고요.




좋은 음악도 연주해 주시지요.


사람 머리에 새의 몸을 가진 가릉빈가는 부처님의 설법도 들려 준답니다.


유유자적 자신들의 세계를 즐기시는 나한들도 보이고요.


왼쪽벽으로는 지장보살을 중심한 삼존이 크게 모셔져있습니다.

지장보살님 모든 소원 이루어 주는 마니보주 들고 중생 구제하러 나서시는 군요.

 


불쌍한 중생들 지옥에 막 떨어지고 있군요.


지옥불 속에서 죄를 뉘우치고 자장보살님께 합장하는 중생들!


커다란 연꽃의 꽃잎 하나 하나가 다 훌륭하신 부처님의 한 세상이랍니다.


작은 하나의 먼지 안에도 온 우주가 담겨 있으며,

부처님의 장엄 세계가 삼천 대천세계로 끝도 없이 펼쳐져 있답니다.

부처님의 극락세계라 하늘에서는 연꽃비가 내리고 있군요.

 


엉뚱한 일로부터 중생들을 보호하고,

또 자신들도 부처님의 말씀을 수행하고 있는 화엄신장들..


부처님을 호위하는 천룡팔부 중의 용왕


이 신장님은 보초 근무 나오셨나 봐요.

이렇게 좋은 세상에 가려면 불자님들 빨리 공부해여 수양을 쌓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