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왕파(英王派)
영왕(1897∼1970) 이은(李垠)은 영친왕(英親王)으로 많이 불린다.
대한제국의 마지막 황태자인 그는 고종의 일곱째 아들이며, 어머니는 귀비 엄씨(貴妃嚴氏)이다.
순종과는 이복형제간이다.
1900년 8월 영왕(英王)에, 1907년 황태자에 책봉되었다.
1907년 12월 11살 때 이토 히로부미(伊藤博文) 통감에 의해 유학이라는 명목으로
일본에 인질로 잡혀간다.
1910년 국권이 일제에 의해 강탈되면서
융희황제(隆熙皇帝:뒤의 순종)가 이왕(李王)으로 폐위되자,
그도 황태자에서 왕세제(王世弟)가 되었다.
1920년 일본의 흡수정책에 따라 일본 왕족 나시모토노미야(梨本宮)의 딸
마사코(이방자.李方子)와 정략결혼을 했다.
1926년 순종이 죽자 형식상으로 왕위 계승자가 되어 이왕이라고 불렸다.
일본에 억류되어 있는 동안, 일본 육군사관학교·육군대학을 거쳐 육군중장을 지냈다.
1945년 일제가 패망하자 귀국하려고 했으나 뜻을 이루지 못했으며,
그 뒤 1963년까지 일본에 머물렀다.
1963년 국적을 회복하고 귀국했으나 귀국 당시 이미 뇌혈전증으로 인한 실어증에 걸려 있는 상태였다.
생전에 부인과 함께 1966년에 심신장애자 재활원인 자행회(慈行會),
1967년에는 그의 아호를 빌린 신체장애자훈련원인 명휘원(明暉園)을 설립하여 사회에 봉사하였다.
그의 사회봉사의 정신은 사후에도 이방자 여사에 의하여 영왕기념사업회,
정신박약아교육시설인 자혜학교(慈惠學校),
1982년 신체장애자교육시설인 명혜학교(明惠學校) 설립 등으로 계승되었다.
진(晋)과 구(玖) 두 아들을 두었으나 맏아들 진은 어려서 죽고,
둘째 아들 황세손(皇世孫) 구는 종약원의 총재로 추대되었으나, 2005년 7월 16일 사망했다.
묘소는 경기도 남양주시 금곡동 홍유릉 영원(英園·영친왕 묘역)에 있다.
* 영왕(英王) 파의 항렬자 일람표입니다
시 조 世 |
선계 | 시조:世 | 36 | 37 | 38 | 39 | 40 | 41 | 42 | 43 | 44 | 45 | 46 | 47 | 48 | 49 | 50 |
제왕 | 파조:代 | 0 | 1 | 2 | 3 | 4 | 5 | 6 | 7 | 8 | 9 | 10 | 11 | 12 | 13 | 14 | |
41 세 | 고종 高宗 |
영왕 (英王) |
은 | 구 | - | - | - | - | - | - | - | - | - | - | - | - | - |
垠 | 玖 | - | - | - | - | - | - | - | - | - | - | - | -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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