희령군(熙寧君)파
희령군(熙寧君)은 태종 이방원과 숙의 최씨 사이에 태어났다.
부인은 둘이다. 순창군부인 신씨(申氏)는 자녀가 없으며, 평산군부인 신씨(申氏)는 3남을 두었다.
묘는 경기도 광주군 동부읍 덕풍리(현 하남시 덕풍동)에 있다.
희령군은 1445년(세종 27) 용비어천가를 찬집(撰輯)할 때 참여했다.
음율에도 능통하여 태종이 아끼던 어금(御琴)을 하사받아 만년까지 이 어사금을 즐겼다.
여러 차례 병란 중에서도 6백 년 간이나 무사히 보존되어 문화재로 지정받았다.
정조가 대통을 이을 때 어느 깊은 밤에 거문고가 스스로 울었다 하여 자명금(自鳴琴)이라 불린다.
희령군의 장남은 숭헌대부 화성군이며, 화성군은 숭헌대부 창원군을 비롯하여 4남을 두었다.
창원군의 장남 덕의정은 명선대부이다.
희령군의 차남은 숭헌대부 영원정(寧原正)이며, 영원정은 명선대부 인천부수를 두었으며,
인천부수는 창선대부와 명선대부 덕은감을 두었다.
호가 이제재(夷齊齋)인 덕은감은 단종이 손위할 때 어가 전후에서 남몰래 영월까지 따라갔다.
단종이 죽자 그의 시신을 엄흥도와 함께 겨울에 땅에 묻고 밀양 고정리에 은거한다.
이곳에서 초가집을 짓고 이제재(夷齊齋)라 했다.
주야로 절하며 통곡하다가 곡기를 끊은 지 5일 만에 피를 토하고 죽었다.
손자 이신성(李信成)이 밀양시 부북면 청운리로 옮긴 후 자손들이 그의 유적을 추모했다.
1983년 세거지인 밀양시 부북면 청운리에 이제재를 중건했다.
가선대부 병조참판 이찬조는 1636년(인조 14) 병자호란 당시
인조가 남한산성으로서 파천(播遷)할 때 선전관으로 오랑캐와 싸우다 장열하게 숨졌다.
경기도 용인시 구성면 보정리 독정동에 그의 정려문이 있다.
*희령군(熙寧君) 파의 항렬자 일람표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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