행운의 전령(행운의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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Οо³°`제왕별 파시조/인조대왕

인조대왕-용성대군(龍城大君) 파

행운의 전령 2010. 8. 15. 15:28

용성대군(龍城大君) 파

용성대군(龍城大君)은 인조의 넷째 아들이자, 효종(봉림대군)의 동생이다.

용성대군은 결혼하기 전에 일찍 죽었다. 그 뒤 1872년 고종 9년에 특명으로

형 인평대군의 아들 복평군(福平君)을 양자로 들여 후사를 잇게 했다.

인평대군은 복녕군·복창군·복선군·복평군 네 아들을 두었다.

이 가운데 복평군은 넷째 아들이다. 용성대군의 형 인평대군의 후손에 남연군이 있다.

남연군의 아들이 이하응, 곧 흥선대원군이다. 흥선의 아들이 바로 고종이다.

이런 이유로 고종은 용성대군의 후사를 이어 준 것이다.

인조는 인렬황후 한씨를 비롯한 5명의 부인에게서 7명의 자녀를 얻었다.

인렬왕후 한씨(1594~1635년)는 영돈녕부사 한준겸의 딸이다.

1610년 능양군과 결혼하여 청성현부인에 봉해지고 1623년 능양군이 왕위에 오르자 왕비에 책봉되었다.

인렬왕후 한씨는 소현세자, 봉림대군(효종), 인평대군, 용성대군 등 4남을 낳았다.

한씨는 용성대군을 낳은 후에 산후병을 얻었다. 그 뒤 1635년 다시 왕자를 출산하다가

아기와 함께 목숨을 잃고 말았다.

한씨의 능은 장릉으로 인조와 함께 경기도 파주시 문산읍 운천리에 있었다.

그 뒤 영조 때 파주군 탄현면 갈현리로 옮겨졌다.

한편 인렬왕후가 죽자 후금은 문상을 온다.

이 과정에서 후금은 정묘호란 때 맺은 조선과의 형제관계를 군신관계로 바꿔야 한다면서

신하의 예를 갖출 것을 강요했다. 결국 조선과 후금은 또다시 전쟁의 소용돌이에 휘말리게 된다.

소현세자는 청나라의 볼모 직후 갑자기 세상을 떠난다.

인조는 차남 봉림대군을 효종으로 왕위를 계승한다.

그 뒤 삼전도에서의 굴욕적인 항복에 이어 두 왕자 소현세자와 봉림대군,

척화파 삼학사(오달제,윤집,홍익한) 등을 볼모와 포로로 내준다.

 

용성대군(龍城大君) 파항렬자 일람표입니다



선계 시조:世 36 37 38 39 40 41 42 43 44 45 46 47 48 49 50
제왕 파조:代 3 4 5 6 7 8 9 10 11 12 13 14 15 16 17
32 세 인조
仁祖
용성대군
(龍城大君)
진규 병한 상중
土典 鎭奎 秉漢 相重 ○應 載○ ○鎔 海○ ○柱 愚○ ○基 義○ ○雲 種○ ○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