행운의 전령(행운의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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옛날 6.25 귀한 자료

행운의 전령 2020. 8. 3. 01:29

옛날 6.25 귀한 자료.......윤정길님 카톡에서

 

▲1950. 9. 30. 전화(戰禍)로 폐허가 된 대전역 .

 

▲1950. 11. 1. 서울 중앙청 앞 지금의 문화관광부 자리

 

▲1950. 11. 1. 서울 중앙청 앞 지금의 문화관광부 자리. 1950.10. 7.

   불타고 있는 김포 비행장.

 

▲1950.10.18. 전화에 그을린 중앙청

 

▲1950.10.18. 국파산하재(國破山河在) 멀리 북악산과 중앙청 돔이 보인다.

 

▲1950.9.20..왜관,낙동강 철교 복구 공사

 

▲1950.10.12..미소리호 군함에서 천진항을 향해 함포사격을 가하고 있다.

 

▲1950.10.20..400여명의 낙하산 부대가 평양부근에 투하되고 있다.

 

▲1950.12.18..북한군에게 뿌린 귀순 권유 전단.

 

▲1950.11.2.적십자사에서 피난민에게 구호물자를 나눠주고 있다.

 

▲1950.10. 13. 경기도 파주,.참혹하게 학살된 시신

 

▲1950.11. 1. 서울중앙청 앞 지금의 문화관광부 자리 주민들이

폐허더미에서 땔감이나 돈이 될만한 물견을 찾고 있다.

 

▲1950.11. 2. 원산의 한 성당. 폐허가 된 성당 내부들이 청소하고 있다.

 

▲1950.11.6.. 북한의 어느 농촌. 탈곡한 볏단을 달구지에 싣고 있다.

 

▲1950.11. 6. 북한의 어느 농촌,전란 중에도 추수를 하고 있다.

바람개비로 알곡을 가리는 농부들.

 

▲1950.11. 19. 북한의 한 지하 무기 공장 내부.

 

▲1950.11. 20. 국경지대. 미군들이 소달구지로 보급품을 운반하고 있다.

 

▲1950.11.18. 미군 폭격으로 파괴된 흥남 비료공장.

 

▲1950.11.18. 미군 폭격으로 파괴된 흥남 송전소..

 

▲1950.11.23. 함경도 갑산,미군 폭격으로 성한 집이 드물다.

 

▲1950.11. 1. 황해도 갑산,평산에 진격하는 유엔군들

두 여인이 전신주 뒤로 불안한 눈길로 바라보고 있다.

 

▲1950.12. 4. 평양을 떠나 대동강을 건너 후퇴하는 국군.

 

▲1950.12. 6. 황해도 사리원. 남행하는 피난열차에 피난민들이 몰려들고 있다.

 

▲1950.12. 8. 황해도 사리원.경기도 금촌,38선을 넘어 후퇴하는 유엔군 차량들.

 

▲1950.12. 9. 끊어진 한강철교.

 

▲1950.12. 10. 포화에 불타는 마을

 

▲1950.12. 12. 한강 부교를 통하여 후퇴;하는 차량들. .

 

▲1950.12. 12. 피난민들이 한강을 나룻배로 건너고 있다.

 

▲1950.12. 12. 유엔군들이 인천항을 통햐 장비들을 후송하고 있다.

 

▲1950.12. 12. 유엔군들이 후퇴하면서 다리를 폭파시키고 폭약을 장치하고 있다.

 

▲1950. 12. 3. 평양, 남행 피난민 행렬 속의 한 소녀.

 

▲1950. 12. 10. 중공군의 참전으로 강추위 속에 후퇴 행렬.

한 병사가 너무 추운 날씨로 모포를 뒤집어쓰고 있다.

 

▲ 1950. 12. 12. 흥남부두, LST 함정에 가득 탄 군인과 피난민들.

미처 함정에 오르지 못한 피난민들이 발을 동동거리고 있다.

대부분의 피난민들은 원자탄이 투하된다는 말에 피난 행렬에 나섰다고 한다.

몇 날의 피난 길이 50년이 더 지났다.

 

▲1950. 12. 14. 서울역, 남행 피난민들이 북새통을 이루고 있다.

 

▲1950. 12. 16. 흥남, 국군과 유엔군들이 후퇴하고자

부두에서 수송선을 기다리고 있다.

 

▲1950. 12. 27. 흥남, 얕은 수심으로 수송선이 해안에 닿을 수 없자

유엔군들이 바다에 뛰어들어 LST로 가고 있다.

 

▲1950. 12. 24. 흥남, 유엔군들이 철수 후 부두를 폭파시키고 있다.

 

▲1950. 12. 19. 묵호. 흥남에서 철수한 장비를 묵호(동해)항에 내리고 있다.

 

▲1950. 12. 28. 서울, 피난민들이 강추위 속에 한강 얼음을 깨트리며

나룻배로 남하하고 있다.

 

▲1951. 1. 5. 피난 행렬 속의 소년과 소녀.

   소달구지가 힘겨워하자 힘을 보태고 있다.

 

▲1950. 10. 11. 서울 교외, 부서진 북한군 전차 위에서 아이들이 놀고 있다.

 

▲1950. 11. 1. 전란으로 폐허가 된 서울.

 

▲1950. 12. 28. 끊어진 한강 철교. 오른쪽은 임시로 만든 부교.

 

▲1951. 1. 3. 한강 철교 부근의 언 강을 피난민들이 걸어서 건너고 있다.

 

▲1951. 3. 16. 서울 중구의 수도극장(현 스카라 극장) 일대.

 

▲1951. 3. 16. 하늘에서 내려다 본 중앙청 광화문 세종로 일대.

 

▲1951. 3. 16. 비행기에서 내려다 본 왕십리 일대.

   멀리 고려대학교 건물이 보인다.

 

▲1951. 3. 16. 하늘에서 내려다 본 서울역 일대.

 

▲1951. 3. 16. 하늘에서 내려다 본 중앙청, 경복궁, 수송동, 팔판동 일대.

 

▲1951. 3. 19. 구호 양곡을 먼저 탄 소년과

   양곡을 타기 위해 줄을 선 주민들.

 

▲ 1950. 10. 12. 원산. 학살된 시신들.

 

▲1950. 12. 11. 고단한 피난길.

 

▲1950. 12. 16. 폭격에 엿가락처럼 휘어진 철교.

 

▲1950. 12. 17. 보급품을 실은 화물 열차가 폭격에 불타고 있다.

 

▲1950. 12. 18. 대구. 훈련소에서 교육을 마친 신병들이 전선으로 가고자

대구역전 광장에 집결해 있다.

 

▲ 1950. 12. 18. 전방으로 떠나는 신병들.

 

▲1950. 12. 18. 대구역. “총알을 요리조리 잘 피해서 어예든동 살아 오이라.”

“어무이 걱정 꽉 붙들어 매이소. 어무이 아들 아잉기요. 내는 꼭 살아 돌아올 깁니다.”

 

▲1950. 12. 21. 경북 왜관. 낙동강 철교 어귀에 부서진 북한군 소련제 탱크.

 

▲1951. 1. 20. 아버지와 아들의 피난길. 다른 가족은 전란에 모두 죽었다.

 

▲1950. 6. 18. 6.25 한국전쟁 발발 일주일 전 의정부 북방 38 접경에서

미 국무장관 덜레스 (가운데) 일행이 38선 너머 북쪽을 살피고 있다.

(덜레스 오른쪽 신성모 국방장관).

 

▲1950. 6. 18. 미 국무장관 덜레스 일행이 38 접경 지대를 살피고 있다.

 

▲1950. 7. 한미 수뇌부들이 환담하고 있다.

(왼쪽부터 조병옥 내무장관, 신성모 국방장관, 무초 주한 미대사,

임병직 외무장관, 워커 주한 미군 사령관).

 

▲ 1950. 7. 26. 맥아더 장군이 전선을 시찰하는

   중, 종군기자들의 질문에 답하고 있다.

   오른쪽 워커 장군.

 

▲ 1950. 8. 15. 이승만 대통령과 신성모 국방장관이 8,15.경축식을 끝낸 후

임시 국회의사당인 문화극장을 떠나고 있다.

신 국방장관은 “아침은 서울에서 먹고, 점심은 평양에서---“ 라고

상대의 전력도 모른 채 큰 소리쳤으나 6.25 발발 후

서울시민은 팽개치고 몰래 서울을 빠져나갔다.

 

▲ 1950. 8. 18. 백선엽 장군(가운데)이 미군과 함께 작전을 세우고 있다.

 

▲ 1950. 9. 16. 구포 신병 훈련소에서 훈시하는 이승만 대통령.

 

▲ 1951. 2. 7. 전선을 시찰하는 맥아더 장군.

 

▲ 1951. 2. 15. 대한민국 해상 이동방송선(HLKT)을 방문한 장면 총리 일행.

 

▲ 1951. 9. 콜트 미 8군 부사령관의 이임식장.

(왼쪽부터 허정, 콜트, 무초 주한 미대사)

 

▲ 1950. 10. 22. 평양, 북한 주민의 학살 현장. 누가 그들을 죽였을까?

ⓒ2004 미국 문서기록보관청.

 

▲ 1950. 11. 2. 거리에 버려진 아이들이 트럭에 실려 고아원으로 가고 있다.

눈망울이 초롱초롱한 아이는 그 후 어떻게 되었을까?

 

▲ 1950. 11. 11. 바지 저고리들의 포로들. 총이나 한 번 제대로

    잡아보고 포로가 되었는지? ⓒ2004 미국 문서기록보관청.

 

▲ 1950. 11. 13. 함흥 덕산광산. 482명을 생매장한 갱도에서 시신을 꺼내

늘어놓은 것을 한 아버지가 아들을 찾고 있다. “제발 내 아들이 아니기를...”

 

▲ 1950. 11. 13. 지아비가 생매장된 갱도 어귀에서 오열하는 지어미.

“날라는 어찌 살라 하고 가시리잇고” ⓒ2004 미국 문서기록보관청.

 

▲ 1950. 8. 12. 북한군 포로.

 

▲ 1950. 8. 10. 폭격으로 불타는 마을.

 

▲ 1950. 8. 10. 핫바지들을 인솔하는 미 해병대.

 

▲ 1950. 7. 29. 경북 영덕, 포화에 쫓기는 피난민.

 

▲ 1950. 7. 29. 경북 영덕. 남자는 등에 지고 여자는 머리에 이고

지향없이 떠나는 피난민 행렬.

 

▲ 1950. 7. 29. 경북 영덕, 논두렁에 머리를 처박고 죽은 북한군 병사.

 

▲ 1950. 7. 29. “뜨거운 전우애” 한 병사가 부상당한 전우를 업어가고 있다.

ⓒ2004 미국 문서기록보관청.

 

▲ 1950. 7. 29. 마을 소년들이 주먹밥을 만들어 군인들에게 나눠주고 있다.

ⓒ2004 미국 문서기록보관청.

 

▲ 1950. 7. 29. 야간전투후 주간 취침.ⓒ2004 미국 문서기록보관청.

 

▲ 1950. 7. 29. 취침 후 병기 손질 ⓒ2004 미국 문서기록보관청.

 

▲ 1950. 8. 4. 피난민들의 보금자리 산동네 판자촌. ⓒ2004 미국 문서기록보관청.

 

▲ 1950. 8. 8. 누가 이 아이를 버리게 했을까? ⓒ2004 미국 문서기록보관청.

 

▲ 1950. 8. 8. 다리 아래 피난민 움막. ⓒ2004 미국 문서기록보관청.

 

▲ 1950. 8. 9. 임시 포로수용소. ⓒ2004 미국 문서기록보관청.

여기 실린 사진은 미국 메릴랜드 주에 있는 NARA

(국립문서기록보관청, National Archives and Records Administration) 5층

사진자료실에 보관된 ”KOREA WAR(한국전쟁)” 파일의

새로운 공개되지 않은 사진들입니다.

이 사진이 기록물이 부족한 우리 조국에 남기를 바랍니다.

생사가 교차되는 전선에서 귀한 사진을 남긴 카메라맨들에게 경의를 표합니다.